#3. 어둠을 먹고 피는 꽃

글: 99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때아닌 소나기가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어깨를 두들기던 빗줄기가 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리네는 자신의 머리 위로 드리워진 우산의 주인에게 대답했다.

"플로, 당신이군요."

플로는 이리네가 몇 시간째 자리를 지키던 무덤을 바라보았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덤에는 급하게 만든 흔적이 이곳저곳 남아있었다.

"이번 작전에서 희생된 단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리네의 목소리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묘한 힘이 담겨있었다.
플로는 눈을 감고, 죽은 이의 가족들이 노심초사 그들의 생환을 기도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존재 자체가 어둠 속에 숨어있어야 하는 이들이니... 그들의 죽음도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습니다."

뱉고 싶지 않은 말들이 성대를 긁으며 나오는지, 짧은 말을 하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졌다.
플로는 잠시 비릿한 피 맛이 입 안에 맴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 꽃을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무릎을 꿇은 플로가 무덤 앞에 놓인 검은 장미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블랙 로즈단이 움직인 곳에 배반자들의 시체와 함께 항상 남겨지는 꽃이었다.
용족의 편에 붙은 천계인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 검은 장미가 자신을 찾아올지 몰라 꿈에서도 진저리를 쳤다.

"항상 피 냄새가 나고, 또 다른 피를 부른다고 손가락질하던가요?"

"비록 검고, 피 웅덩이 속에서 어둠을 먹고 피는 꽃이지만 한 줄기 희망을 보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

잠깐 사이 평소대로 돌아온 플로의 목소리에 이리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또한 슬픔을 느끼지 않을 리 없었다. 다만, 더 많은 슬픔을 만들지 않기 위해 눈앞의 광경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 당신과 단원들의 이름이 밝은 곳으로 드러나는 날이 올 거예요."

"네, 그리 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이리네의 목소리에 소용돌이치던 슬픔과 회한의 감정들은 어느덧 잠잠해져 있었다.
플로는 그런 이리네를 마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어둠을 먹고 피는 꽃'이라..."

이리네는 건네받은 검은 장미를 무덤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무덤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우산을 접은 플로가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어느새 맑게 갠 하늘이 동틀 녘의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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