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의 무게

글: REY

"읏! 차... 꽤 무겁군. 그럴 수 있지. 하하하!"

오스카가 양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웬만한 사람은 들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크기의 물건은 천으로 곱게 감싸인 채,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베닐은 생각에 잠긴 채, 이터널 플레임 본부에 지원 물품을 보급하고 있는 컴퍼니 도흐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이봐, 그 무기들은 저쪽으로 옮겨야지. 말하지 않았나, 여기 연구실에는 부품들만 가지고 오라고. 뭐 못 들었을 수도 있지. 하하하! 어서어서 움직여."

자신의 실수에 당황한 오스카의 제자가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떨어트렸다.
요란한 쇳소리가 실험실 전체에 울려 퍼졌고, 넉살을 피우며 가볍게 미소 짓던 오스카의 표정에 무게가 실렸다.

"정신 안 차리나? 소란스럽게 굴었다가 용족들이 쳐들어올걸세."

제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너스레를 떨며 유쾌하던 오스카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상인이라면 자기 값어치는 제대로 해내야지. 자칫 잘못했다가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도 있으니 명심하게."

오스카의 진지한 눈빛은 제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컴퍼니 도흐 상인들은 자신들의 무기에 값을 매기고, 그 값어치를 증명해낸다.
값어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무기상은 신뢰를 잃는다.
컴퍼니 도흐에게 이 혁명은 전 재산을 걸어도 될 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기는 내가 정리할 테니, 이만 가봐. 다시 안 그러면 되니 주눅 들 거 없네."

오스카는 멀어져 가는 제자를 바라보다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다시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주베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하하! 아무리 이곳을 지나다니는 용족 수가 줄었다고 해도 방심할 수 없지. 안 그런가 주베닐?"

"철의 무덤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건 아니니까."

철의 무덤, 용족과의 전투가 가장 많이 일어난 이곳에서 이터널 플레임은 대바칼병기를 연구하며 남겨진 불씨를 다시 키우고 있었다.

"줄어든 용족 수만큼, 죽은 병사들의 수는... 차마 셀 수도 없겠지."

주베닐은 온몸에 가시가 박혀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나? 자네답지 않군. 하하하! 자네라면..."

"영감."

그는 당장이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오스카는 주베닐의 어깨 위에 놓여있는 책임에 대해, 그를 짓누르고 있는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 이 혁명이 수많은 생명을 밟고 이루어져야 할 만큼 가치가 있다 생각합니까?"

"어찌 그리 나약한 소리를 하는 건가. 자네를 믿고 따르는 대원들 생각은 못 하나?"

"밤낮으로 생각해. 단 한 순간도 생각 안 한 적이 없다고. 그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지독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는지를 생각하면..."

주베닐이 해방을 위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단 말인가...
오스카는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 철의 무덤뿐만 아니라 천계 전체가 무덤이야. 매일같이 무덤 위를 걷고 있는 기분이라고!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혁명 따위..."

"하하하! 그래. 자네 말대로 천계의 땅은 죽은 천계인들로 퇴적되어 있겠지. 특히 이곳은 이터널 플레임이 만든 기계들의 무덤이기도 하니까."

"희망을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렸지. 앞으로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고."

"자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들의 실패뿐인가 보군."

"애써 포장하지 마시죠. 영감, 그게 현실이니까."

"그들이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로 덤볐는지는 보이지 않나?"

"허울 좋은 말에 개죽음당한 거지, 뭐."

오스카는 주베닐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무언가 결심한 듯 허리를 숙여 아까 그가 가져왔던 물건을 어루만졌다.
오스카가 감싸고 있던 천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자, 거대한 나무판자가 위용을 드러내며 나타났다.

"... 건화문?"

"하하하! 바칼과 용족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걸려있던 궁궐 대문의 현판이지."

"그걸 어떻게 영감이 가지고 있지?"

"아주 오래전에 우리 컴퍼니 도흐에 맡겨진 물건일세. 하하하! 어떤가?"

천계 연합군에 소속되기 전, 컴퍼니 도흐는 대를 이어 경영하는 무기상이었다.
바칼의 압제가 계속되어 경제가 무너지자 컴퍼니 도흐는 물건을 받고 무기를 내어주기도 했다.

"스승님 말씀에 따르면 용들에게 궁을 점령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떤 귀족 가문에서 간신히 현판을 챙겨두었다더군."

건화문의 현판은 컴퍼니 도흐에서 긴 세월 동안 보관해오던 물건이었다.
역사적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 물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 귀족 자제 중 하나가 바칼에게 대항하기 위해 가문 대대로 오랫동안 보관해오던 현판을 우리 무기상에 맡기고 무기를 받아 갔다는 거야."

"돈 대신 현판으로 계산한 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거 아니었겠나? 현판을 맡기면서 말했다더군. 지금은 비록 가치를 잃어버린 황궁의 현판이지만 언젠가 황금보다도 더 값진 가치가 생기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자신이 그렇게 만들 거라고."

"하지만 결국, 그자도 실패했군."

"우리 컴퍼니 도흐는 그자의 꿈을 믿었어. 그리고 상인이기만 했던 우리가 전투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지. 적극적으로 바칼에게 대항하기로 마음먹은 거야. 컴퍼니 도흐는 천계의 모든 실패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이 혁명에 참여하기로 했네. 그자는 이름도 없이 잊혀졌지만, 천계인의 꿈으로 남았지. 자네는 무엇을 위해 이 혁명에 참여했지?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살아남았다고 원망만 할 건가?"

오스카는 주베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살짝 움켜쥐었다.

"자네 또한 그들의 꿈이었을지 모르지."

"꿈이라..."

살아남아야 한다. 대바칼병기의 완성을 위해 당신만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생사의 위기에서 주베닐을 도망 보내며 외치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의 눈 속에 담겨있던 것은 절망이었나 희망이었나.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결정하면 말해주게. 나는 밖을 정리하지."

"영감. 왜 여기까지 현판을 가져온 겁니까."

오스카는 주베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주베닐은 오스카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발견했다.

"주베닐, 자네 또한 나의 꿈이야. 기억해 주게. 미안하네. 안 그래도 무거운 자네의 어깨에 또 큰 짐을 얹는 기분이군.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나. 하하하!"

넉살 좋게 웃으며 오스카는 자리를 떠났다.
주베닐은 오스카가 남기고 떠난 건화문 현판을 다시 바라보았다.

"'하늘이 되다'라... 현판이 다시 걸리면, 그날이 이름을 되찾는 날이겠군."

천천히 일어나,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주베닐은 짐을 들어 천천히 나르기 시작했다.

"이거 꽤 무겁군. 밖에 누구 없나? 같이 좀 들지."

멀리서 주베닐을 향해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함께 짐을 짊어지고 갈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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