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경계에 선 사람들
글: 99
"북쪽의 공기는 숨쉬기 힘들 정도로 차군요."
로자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북쪽의 찬 공기를 만나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폐부를 찌르는 한기에 숨 쉬는 것조차 힘겨운 느낌이었다.
"용의 도시에 머물다 온 이들에겐 그럴 수도 있겠죠. 조금 있으면 금방 적응될 겁니다. 어쨌든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말이에요."
"사라 님은 왜 이곳에 머물고 계십니까? 다른 대가문들은 진작에 바칼의 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들었는데요."
유르겐 가문.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중앙의 소식에 어둡다고는 하나,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사라 웨인은 이런 한미한 가문 출신이 굳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바칼 님의 명이라고 하나,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누군가는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또 이곳에 남아 불충한 자들의 동향을 보고할 이가 필요하다해서 제가 그 역할을 맡았죠."
"...그렇군요."
막힘없는 답변에도 무언가 우습다는 표정을 짓는 로자의 모습에 사라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대청을 향했다. 대청의 기둥 뒤에는 무기를 든 부하들이 사라의 명령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로자는 들고 있던 쥘 부채로 입을 가리며 미소 지었다. 좀처럼 그 속을 알 수 없는 미소였다.
"불의 숨이 멎을 때가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뜻밖의 말에 사라는 당황한 표정으로 로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그녀의 두 눈이 불타듯 번쩍이고 있었다.
사라는 무의식적으로 부하들에게 보내려던 수신호를 간신히 멈춰 세웠다.
용족들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이 자를 보냈다면, 아무리 조용히 처리해도 들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목숨이 달아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요. 당신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가요?"
"아니오. 당신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못 박힌 듯 자리에 멈춰선 사라를 뒤로하고 로자는 유유자적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라는 바람 소리에 묻힐 정도로 나지막하게 휘파람을 불더니, 다시 그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당을 쓸던 부하 중 하나가 주변을 살피기 위해 조용히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당신이 혁명군들 사이에서 '가장 비정한 배신자'라고 불린다는 것도. 당신의 밀고 때문에 발각당해 전멸한 조직의 수가 여섯을 넘어간다는 것도."
쥘부채가 로자의 손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작년에 대가문의 가주들이 궁으로 불려갔을 때, 용족들의 유흥으로 전시된 혁명군들의 시체를 누구보다 앞장 서서 밟고 궁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도..."
순간 사라의 눈가에 미세한 떨림이 생겨났고, 그녀는 다른 곳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눈을 감았다.
시야를 가린 어둠 속에서 끔찍했던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매캐한 탄내가 날아와 폐를 가득 채우는 듯했고,
내딛는 발은 부패한 시체를 밟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치미는 욕지기 속에서 사라는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꼈으나,
잠시 후 눈을 뜬 그녀의 표정에는 한 꺼풀 가면이 씌워진 듯 아무런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혁명군의 구호를 제창한 이유가 뭔가요?"
"그날 미소를 띠며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에서 커다란 슬픔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슬픔?"
사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감춰진 소매 아래에 꽉 쥔 주먹 사이로 옅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더군요."
"......"
자신도 모르게 얕은 한숨을 내쉬며, 사라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톱이 깊게 파고든 흉터들이 아직도 그날의 기억처럼 선명히 그곳에 남아있었다.
"그 후로 당신에 대한 의문이 생겨 따로 조사를 해봤습니다. 세간에 알려진 소문과는 많은 것이 다르더군요."
앞서 걷고 있던 로자가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였다.
"당신이 용족에 밀고한 조직들 또한 이미 그 위치가 드러났거나, 머지않아 꼬리가 잡힐 게 뻔한 무모한 행동을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혁명군에 몰래 전해준 정보 덕분에 전멸을 피한 조직들이 더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둘의 대화가 들리는 거리였는지, 대청의 기둥 뒤에서 성급한 이들의 인기척이 나기 시작했다. 사라는 은밀한 눈짓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후우... 항상 몸가짐을 조심했지만, 역시 미흡한 부분이 있었군요. 하지만 당신처럼 머리 좋은 이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거예요."
찬 바람 사이로 담장 밖에서 희미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주변에 용족의 감시가 없다는 신호였다.
"당신이 원하는 건 뭐죠? 용족들에게 내 행적을 일러바치고 대가문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건가요?"
"후후, 대가문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사라의 손은 어느새 소매 속에서 리볼버의 방아쇠에 걸려있었다. 로자의 대답 여부에 따라, 리볼버의 총구가 그녀를 향해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수 있도록.
"허나, 그건 먼 훗날의 일이 될 것입니다. 용족의 지배가 이어진다면, 제 살아생전에는 보지 못할 광경일 수도 있지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로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사라의 손을 마주 잡았다. 깊이 패인 손바닥의 흉터에 따스한 온기가 와닿았다.
"저도 당신처럼, 천계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로자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북쪽의 찬 공기를 만나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폐부를 찌르는 한기에 숨 쉬는 것조차 힘겨운 느낌이었다.
"용의 도시에 머물다 온 이들에겐 그럴 수도 있겠죠. 조금 있으면 금방 적응될 겁니다. 어쨌든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말이에요."
"사라 님은 왜 이곳에 머물고 계십니까? 다른 대가문들은 진작에 바칼의 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들었는데요."
유르겐 가문.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중앙의 소식에 어둡다고는 하나,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사라 웨인은 이런 한미한 가문 출신이 굳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바칼 님의 명이라고 하나,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누군가는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또 이곳에 남아 불충한 자들의 동향을 보고할 이가 필요하다해서 제가 그 역할을 맡았죠."
"...그렇군요."
막힘없는 답변에도 무언가 우습다는 표정을 짓는 로자의 모습에 사라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대청을 향했다. 대청의 기둥 뒤에는 무기를 든 부하들이 사라의 명령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로자는 들고 있던 쥘 부채로 입을 가리며 미소 지었다. 좀처럼 그 속을 알 수 없는 미소였다.
"불의 숨이 멎을 때가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뜻밖의 말에 사라는 당황한 표정으로 로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그녀의 두 눈이 불타듯 번쩍이고 있었다.
사라는 무의식적으로 부하들에게 보내려던 수신호를 간신히 멈춰 세웠다.
용족들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이 자를 보냈다면, 아무리 조용히 처리해도 들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목숨이 달아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요. 당신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가요?"
"아니오. 당신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못 박힌 듯 자리에 멈춰선 사라를 뒤로하고 로자는 유유자적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라는 바람 소리에 묻힐 정도로 나지막하게 휘파람을 불더니, 다시 그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당을 쓸던 부하 중 하나가 주변을 살피기 위해 조용히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당신이 혁명군들 사이에서 '가장 비정한 배신자'라고 불린다는 것도. 당신의 밀고 때문에 발각당해 전멸한 조직의 수가 여섯을 넘어간다는 것도."
쥘부채가 로자의 손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작년에 대가문의 가주들이 궁으로 불려갔을 때, 용족들의 유흥으로 전시된 혁명군들의 시체를 누구보다 앞장 서서 밟고 궁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도..."
순간 사라의 눈가에 미세한 떨림이 생겨났고, 그녀는 다른 곳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눈을 감았다.
시야를 가린 어둠 속에서 끔찍했던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매캐한 탄내가 날아와 폐를 가득 채우는 듯했고,
내딛는 발은 부패한 시체를 밟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치미는 욕지기 속에서 사라는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꼈으나,
잠시 후 눈을 뜬 그녀의 표정에는 한 꺼풀 가면이 씌워진 듯 아무런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혁명군의 구호를 제창한 이유가 뭔가요?"
"그날 미소를 띠며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에서 커다란 슬픔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슬픔?"
사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감춰진 소매 아래에 꽉 쥔 주먹 사이로 옅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더군요."
"......"
자신도 모르게 얕은 한숨을 내쉬며, 사라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톱이 깊게 파고든 흉터들이 아직도 그날의 기억처럼 선명히 그곳에 남아있었다.
"그 후로 당신에 대한 의문이 생겨 따로 조사를 해봤습니다. 세간에 알려진 소문과는 많은 것이 다르더군요."
앞서 걷고 있던 로자가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였다.
"당신이 용족에 밀고한 조직들 또한 이미 그 위치가 드러났거나, 머지않아 꼬리가 잡힐 게 뻔한 무모한 행동을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혁명군에 몰래 전해준 정보 덕분에 전멸을 피한 조직들이 더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둘의 대화가 들리는 거리였는지, 대청의 기둥 뒤에서 성급한 이들의 인기척이 나기 시작했다. 사라는 은밀한 눈짓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후우... 항상 몸가짐을 조심했지만, 역시 미흡한 부분이 있었군요. 하지만 당신처럼 머리 좋은 이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거예요."
찬 바람 사이로 담장 밖에서 희미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주변에 용족의 감시가 없다는 신호였다.
"당신이 원하는 건 뭐죠? 용족들에게 내 행적을 일러바치고 대가문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건가요?"
"후후, 대가문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사라의 손은 어느새 소매 속에서 리볼버의 방아쇠에 걸려있었다. 로자의 대답 여부에 따라, 리볼버의 총구가 그녀를 향해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수 있도록.
"허나, 그건 먼 훗날의 일이 될 것입니다. 용족의 지배가 이어진다면, 제 살아생전에는 보지 못할 광경일 수도 있지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로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사라의 손을 마주 잡았다. 깊이 패인 손바닥의 흉터에 따스한 온기가 와닿았다.
"저도 당신처럼, 천계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